튀르키예에 가면 어떤 남성의 얼굴이 항상 눈에 띱니다. 정말 어느 길가를 가도 현수막에서 이 남성의 얼굴을 볼수가 있는데요. 이 인물은 ‘아타튀르크’라는 이름의 튀르키예의 영웅입니다. 어떤 일을 했길래 국민들로 부터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을까요?
아타튀르크를 한국인의 입장에서 쉽게 설명하면 이순신 + 세종대왕 (+ 근대화 / 세속화) 입니다. 이게 가능한가 싶으시죠? 이번 글에서는 아타튀르크가 튀르키예에 끼친 영향 3가지를 알아보겠습니다.
나라를 구한 전쟁 영웅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튀르키예(당시 오스만 제국)는 연합군에 맞섰었고 패배했습니다. 이로 인해 오스만 제국은 크게 기울었고, 무려 국토의 절반 이상이 다른 국가들의 지배, 간섭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오스만 황제였던 메흐메트 6세는 이러한 상황에 순응하였습니다. 국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결국 이러한 나라의 상황에 저항하는 소규모 군대, 단체들이 곳곳에서 생깁니다.
아타튀르크는 이러한 저항단체 즉 국민들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고 해당 지역 (삼순)으로 갑니다. 하지만 아타튀크르는 오히려 그들과 합류하고 여론과 많은 군대의 지원을 받아 항전을 시작합니다.
그는 결국 독립전쟁에 성공하여 빼았겼던 국토의 많은 지역을 되찾을 수 있었고, 아타튀르크는 나라는 구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근대화와 세속화(탈이슬람)
튀르키예의 주변 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이슬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 국가입니다. 대부분 여성들이 히잡을 착용하고, 화려한 도시 두바이도 종교 문제로 술을 사먹기 까다롭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튀르키예만 이슬람의 영향력이 적을까요?
아타튀르크는 나라를 ‘오스만 제국’ 에서 ‘튀르키예 공화국’ 으로 바꾸고 초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대통령이 되서 그는 근대화와 세속화를 진행합니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며 이슬람의 영향력을 크게 축소시켰습니다. 아야 소피아라는 세계적인 종교 건물 모스크를 박물관으로 바뀠습니다.
또한 여성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했고, 공공장소에서 히잡 금지 명령을 내린 등 여성들에게 교육, 평등도 크게 개선했습니다.
현재 튀르키예 알파벳 표기법을 도입
오늘날 튀르키예어를 보면 대부분 영어의 알파벳으로 표기된 것을 알수 있습니다. 덕분에 외국인 입장에서도 튀크키예어를 발음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이또한 아타튀르크의 업적입니다. 당시에 튀르키예는 아랍 문자를 쓰고 있었는데요,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이 전체의 10%도 안되었었습니다. 아랍 문자는 이슬람과도 연관되어 있고 배우는데도 시간이 오래걸렸습니다.
그는 튀르키예의 아랍문자 표기를 1년도 안되어서 라틴문자 기반의 튀크키예 알파벳을 완성했습니다. 아타튀르크는 시민들에게 새 알파벳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시골을 돌아다녔습니다.
결과적으로 문맹률 개선에 크게 개여했고 국민들의 전반적인 교육 수준이 올라갔습니다. 우리나라의 세종대왕의 업적과 매우 비슷하죠?
현재 아타튀르크의 위상
사실 아타튀르크의 본명은 ‘무스타파 케말 (Mustafa Kemal)’입니다. ‘아타튀르크 (Atatürk)’ 라는 이름은 ‘튀르크인의 아버지’ 라는 뜻으로 튀르키예의 국민 의회로 받은 성입니다.
오늘날 까지도 아타튀르크에 대한 튀르키예인들의 사랑은 여전하며 튀르키예 화폐에서도 거의 지폐에 아타튀르크의 모습이 들어가 있습니다.